1998년 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뉴스 25호
朝鮮人従軍慰安婦問題を考えるニュース NO.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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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와 내용
본 자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1991년 결성된 시민단체인 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이하 '생각하는 모임')이 발행한 뉴스레터 『조선인종군위안부를생각하는뉴스』 제25호 간행물이다. 주요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전세계의 동향, 전쟁피해조사회법 촉구 집회 및 아시아연대회의 등 각종 참가 보고 기사, 각종 기고, 한국 소식, 자료, 기사 스크랩 등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목차
-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움직임 (98년 1월 ~ 5월)
- '전쟁피해조사회법' 실현을 위하여! 집회 보고
- 피해자의 증언과 가해자의 증언
- 왜, '위안부' 문제는 재판받지 못했던 것인가
- 관부재판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 진상 구명과 입법화의 실현을 향하여
- 아시아연대회의 보고
- 제5회 아시아연대회의에 참가하고
- 영화 '나눔의집 2'를 보고
- 서평. 『나눔의집의 할머니들』
- 4.24 한신교육투쟁 50주년 기념집회에 참가하고
- 헬퍼 일기. 재일동포 고령자를 위한 복지를
- 한국여성통신. 위안부 만행 고발 강덕경 할머니 1주기
- 한국여성통신. 정대협 '분노의 수요일' 300회
- 제5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공동 결의문
메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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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원문) 朝鮮人従軍慰安婦問題を考えるニュース NO.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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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MA-02-0000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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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일자 199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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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기관(생산자) 조선인종군위안부문제를생각하는모임(朝鮮人従軍慰安婦問題を考える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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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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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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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조건(저작권) 출처표기, 상업적 이용 및 2차 저작물 작성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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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수집자 황보강자
분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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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출처 국외 > 민간 > 시민/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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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도서/간행물류 > 리플렛/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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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1990년대
관련 기록물 및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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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제66차 회기 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 의견서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CEACR)가 1995년 제66차 회기에서 작성한 의견서이다. 다음 해인 1996년 3월 보고서로 출판되었다. 1995년 2월 일본의 오사카부 특수영어교사노동조합( Osaka Fu Special English Teachers' Union, OFSET)가 일본군'위안부'문제와 일본 정부의 전쟁 중 강제노동 문제를 강제노동조약 위반사항으로 조사해줄 것을 ILO에 요청했다. 이는 1995년 6월 12일 ILO의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EACR)에 접수되었으며, 이에 따라 본 의견서가 제출되었다. 의견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존재했던 일본군'위안부'가 ILO 제29호 강제노동협약을 위반한 '성노예'로 규정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여성의 강제 노동에 따른 임금의 지급과 보상 및 기타 급부를 제공하는 등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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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제67차 회기 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 의견서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CEACR)가 1996년 제67차 회기에서 작성한 의견서이다. 다음 해인 1997년 3월 보고서로 출판되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가 '성노예'였음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에 보상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1995년 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EACR)의 의견서에 대해 1996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답신을 보냈다. 그간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포함해 전쟁과 관련된 청구권 문제의 법적 해결을 위해 국제법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왔고,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였으며,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국민기금)'을 통해 보상책을 제시해왔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EACR)는 본 의견서에서 그 같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검토한 후, 일본군'위안부'는 ILO 제29호 강제노동협약을 위반한 문제임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 있다. 전쟁 당시 일본은 강제노동협약에 비준한 상태였고, 일본의 형법에도 강제에 의한 간음 및 강간에 대한 처벌규정이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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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ILO 제29호 강제노동협약ILO(국제노동기구)가 1930년 6월 28일 총회에서 채택한 제29호 강제노동협약으로, 1932년 5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했다.비준 국가에게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본 협약은, 제 2조에서 강제노동금지 예외 조건, 제13조~제15조에서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1932년 11월 21일 강제노동협약을 비준하였으며, 1933년 11월 21일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협약 제 29조에서 협약의 발효일로부터 10년간 이를 폐기할 수 없으며, 협약의 폐기를 등록한 1년 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일본은 1944년 11월 21일까지 협약의 효력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기반하여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하고, ILO 제29호 강제노동협약을 위반한 문제로 제기하여왔다. 이에 대해 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문제가 강제노동금지 예외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며, 강제노동협약을 위반한 '성노예'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일본 정부가 여성의 강제 노동에 따른 임금의 지급과 보상 및 기타 급부를 제공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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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UN 인권위원회 전쟁 중 군대 성노예제 문제에 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일본 조사 보고서(쿠마라스와미 보고서)UN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가 1996년 1월 4일 제출한 보고서이다. 1994년 제 50차 인권위원회에서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을 신설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으며, 스리랑카의 변호사 라디카 쿠마라스와미가 같은 해 4월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되었다.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1995년 7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시민단체 대표, 연구자, 법조인 등을 만나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조사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96년 제 52차 인권위원회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성노예의 정의, 역사적 배경, 피해자 증언, 한국, 북한, 일본 3개국의 입장,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본 보고서는 일본군'위안부'를 군대 성노예제로 파악하고, '국민기금'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국제법을 위반한 데 대한 법적 해결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았다. 특히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 정부에 (1) 위안소의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것, (2) 배상 문제 특별보고관이 제시한 원칙에 따라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하고 이를 위한 특별행정법정을 설치할 것, (3) 관련된 모든 문서와 자료를 공개할 것, (4) 피해자 각각에게 문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사죄할 것, (5) 교육과정에 역사적 진실을 반영하여 인식을 향상시킬 것, (6) 가능한 한 가해자를 찾아 처벌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국제적 차원에서도 (1) NGO 등이 UN에서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며 국제사법재판소 혹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의견을 구할 것, (2) 한국과 북한 정부는 일본의 책임 및 배상 등 법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의 의견을 구할 것, (3) 피해자가 고령인 점을 고려하여 일본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번역본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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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5차 일본군'위안부'문제 아시아연대회의 공동결의문1998년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이제, 일본 정부의 배상으로 해결을!"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일본군'위안부'문제 아시아연대회의(Asian Solidarity Conference on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이하 아시아연대회의)의 공동결의문이다. 결의문에서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국민기금)'의 해산, 유엔 인권위원회가 결의한 권고사항의 이행, 진상규명과 국가 배상 실현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한편 본 회의에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2000년 법정) 개최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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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4일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내각관방장관 담화보고 (고노담화)1993년 8월 4일 당시 일본 내각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의 기자회견 발언 내용을 한국어로 정리한 것 으로, 1991년 말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정부 조사의 2차 결과를 발표한 내용이다. 본 기자회견에서 고노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모집 등에 있어서 사기, 감언에 의한 것, 그리고 강압에 의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존재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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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4일 내각관방 내각외정심의실 조사결과 발표문1992년 6월 마무리된 1차 조사 결과에 더해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 7월 말 이루어진 관련 피해자 인터뷰의 내용이 종합된 결과를 한국어로 정리한 것으로, 1차 조사 결과 보고에 비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위안소 설치 경위 및 시기, 설치 지역과 일본군 '위안부'의 수, 출신지, 모집과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일본군에 의한 의사에 반한 강제 모집이 존재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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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고(故) 김학순님 장례식본 자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자 김학순의 장례식 풍경을 담은 추모 동영상이다. 그는 1997년 12월 16일 오전 1시 서울 동대문구 이화여대부속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으며, 서울 송파구 서울중앙병원 영안실에 빈소가 마련되었다. 영상에는 장례식 내방자들의 모습 및 고인의 종교인 기독교 예식에 따른 입관 예배와 영결예배가 담겨 있다. 또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기자회견 풍경이 이어진다. 기자회견에서는 김학순의 육성이 재생되었으며 다른 피해자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발인까지의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영상의 말미에서는 김학순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메시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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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술자료 재정리 자료집: 김학순본 자료는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가 여성가족부의 “2016년 일본군’위안부’피해 관련 사료 조사 및 D/B화 사업”의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작성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술자료 재정리 자료집>의 김학순 편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정신대연구회>가 1993년도에 발간한『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한울)에 수록된 증언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하였다. 면담 및 정리를 담당한 것은 당시 한국정신대연구회의 연구원이었던 이상화이다. 국내 첫 공개 증언자인 김학순은 전시 통제로 인해 생업이던 기생업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양부(수양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베이징에 갔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본 보고서에서는 이 증언의 원본을 볼 수 있으며, 그 외에 김학순의 생애를 정리한 연보와 이동 경로, 해제가 함께 실려있다.
- 연보
- 이동 경로
- 해제
- 증언 -
2010년 '위안부' 재판의 판결로 일본의 사법이 '인정'한 일본군의 가해 사실∙원고의 피해 사실본 자료는 '위안부'문제올연대네트워크(이하 '올연대')가 2010년 7월 30일, '위안부' 피해자들의 재판 사례를 정리하여 간행한 팜플렛이다. 이 팜플렛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사죄, 배상 청구 재판 10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재판 과정에서 ‘위안부’에 관한 일본군의 가해 사실과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이 일본 사법부에 의해 일부 ‘인정’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특히 1998년 4월 27일, 야마구치지방재판소(山口地裁) 시모노세키지부(下関支部)의 재판, 이른바 ‘관부재판(下関裁判)’은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내각뿐만 아니라 국회 역시 ‘위안부’ 문제 해결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여 주목되고 있다. 올연대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제연행은 없었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일본 사법부에 의해 ‘인정’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정리하고 알림으로써 향후 운동에 도움에 일조하기를 바랐다고 팸플릿 제작 의도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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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요청서본 자료는 일본의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2007년 결성된 시민단체,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올(All)연대네트워크(이하 '올연대')가 일본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2009년 6월 13일 일본 민주당(民主党)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에 보낸 요청문이다. 자료에서 올연대는 민주당이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전후 보상 문제의 해결에 힘써줄 것을 요청하였다. 자료 2쪽에는 2009년 6월 10일을 기준으로 요청문에 찬동하는 38 단체가 열거되었다. 당시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일본 정치의 변화와 민주당에 기대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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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한일 시민연대의 가능성과 곤경> 국제워크숍 자료집
본 자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한일 시민연대의 가능성과 곤경>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학술 워크숍 자료집이다. 해당 워크숍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일 시민사회 간 연대와 그 과정에서의 갈등을 조명하며, 트라우마와 책임, 그리고 역사적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각과 방법론을 논의했다.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학계와 시민단체의 발제가 포함되어있다. 자료집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발제의 토론문 및 일본어본은 첨부파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부> 국경을 넘는 시민연대의 모색들
‘관부재판’에 관여하며 - 하나후사 도시오 (전후 책임을 묻는다.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관부재판』저자) 2
오메가메 다져온 소소한 한일연대들 - 안이정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전 대표) 17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 정책 과정 연구 - 츠치노 미즈호 (메이세이대학 준교수) 34
<2부> 포스트 식민 법정의 경험들
‘2000년 여성법정’의 성과와 경험을 말한다 - 이케다 에리코 (wam 전 관장) 52
‘2000년 여성법정’과 한일 시민사회 연대 - 양미강 (2000년 여성법정 당시 한국위원회 실무책임자, 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63
1990년대 재일여성들의 ‘위안부’운동과 교차적 행위성 - 조경희 (성공회대학교 교수) 70
관련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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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2월 25일
-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소송 제기(일명 관부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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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08월 04일
-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관방장관, 위안소 설치·운영과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시인하는 일본 정부의 2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 이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뜻을 전하는 담화 발표(일명 고노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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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03
-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CEACR),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ILO 제29호 강제노동협약을 위반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 제출.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언급한 첫번째 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CEACR)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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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07월 19일
-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국민기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00여명에게 200만엔의 보상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기로 최종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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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08월 14일
-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국민기금),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 4명에게 보상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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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01월 11일
-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국민기금),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7명에게 위로금 200만엔과 의료복지금 300만엔, 그리고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 총리의 사과 편지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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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2월 29일
-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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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01월 06일
-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 한국 일간지들에 '국민기금'의 활동을 설명하고 피해자들의 기금 수령절차를 홍보하는 광고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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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2월 16일
-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 공개 증언한 김학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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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04월 15일
- 서울에서 제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 '이제, 일본 정부의 배상으로 해결을!' 개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열기로 결의(~199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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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04월 21일
- 한국 정부, 국무회의에서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52명에게 정부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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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04월 27일
-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90만엔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명령하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일명 관부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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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01월 04일
- UN 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 UN 인권위원회에 「전쟁 중 군대 성노예제 문제에 관한 조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 일본 조사 보고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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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03
-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CEACR), 1996년에 이어 두번째로 일본군 '위안부'는 ILO 제29호 강제노동협약을 위반한 것이므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 제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