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2월, 대한민국과 일본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발효된 이후, 한국과 일본간의 전후 처리에 대한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 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1990년 1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였던 윤정옥이 한겨레 신문에 위안부 문제 조사 결과를 연재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 11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이 설립되고, 한국 여성 강제동원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등장하게 된다.
1991년 8월 김학순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최초 공개 증언을 한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35명이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점차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였다. 1992년 8월, 서울에서 ‘제1차 정신대문제 아시아연대회의’가 개최되었고, 같은 달, 정대협이 처음으로 UN 인권 소위원회에 참석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구두발언하였다. 이어 1992년 12월, UN 인권소위원회의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Theodoor Cornelis van Boven)을 초청하여 국제인권협약과 강제종군위안부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테오 반 보벤은 이듬해인 1993년, UN 인권위원회에 “인권과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 및 회복의 권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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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였던 윤정옥이 한겨레 신문에 위안부 문제 조사 결과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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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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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김학순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최초 공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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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35명이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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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서울에서 ‘제1차 정신대문제 아시아연대회의’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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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이 처음으로 UN 인권 소위원회에 참석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구두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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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UN 인권소위원회의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Theodoor Cornelis van Boven)을 초청하여 국제인권협약과 강제종군위안부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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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UN 인권위원회에 “인권과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 및 회복의 권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