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기림비 설립과 한인 단체 운동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채택에 한국계 미국인들과 한인 커뮤니티와 시민단체 활동 또한 영향을 주었다. 1992년 황금주님이 워싱턴 D.C. 지역에서 증언한 이후, 한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진 풀뿌리 운동과 2000년 9월 워싱턴 D.C 지역에서 제기된 4개국 15명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 등이 있었다. 마이클 혼다는 이러한 노력이 모여 채택된 HR121의 의미에 대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해결된 마침표가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첫 단계일 뿐이라며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새로운 시작과 전환점이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HR121이 어떠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말대로 이 결의안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한일 간의 역사 분쟁을 넘어 성폭력 반대 운동, 여성인권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재미 한인 단체와 미국 의회의 협조로 위안부 기림비 건립과 관련 결의안들이 속속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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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국에 최초로 세워진 일본군‘위안부’ 기림비 1호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도서관 부지에 위치함
제공: Borough of Palisades Park, (전) 부시장, Jason Kim
그렇게 세워진 미국의 일본군‘위안부’ 기림비는 2025년 8월 현재 총 11개로, 1호는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시립도서관 내에 있다. 기림비 1호는 2007년 7월 미국 연방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HR121)이 통과된 것을 계기로 미국 팰리세이즈파크 시 주도로 건립이 추진되었으며, 2010년 시와 한인시민단체들의 협력 끝에 설립되었다.
2 이후 2013년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한인유권자센터(KAVC)와 뉴저지주 지방정부의 주도로 미국 뉴저지주 버켄카운티 법원 앞에도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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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미국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 1한국계 미국인과 한인시민단체가 주도하는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함
- 2보편적 인권과 여성인권의 문제로의 인식 전환
미국에서 일어난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인권 유린과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었다. 더불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옮기며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연구자 민디 코틀러(Mindy L. Kotl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안부’ 운동을 전개하면서 위안부 제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없었다. 다만 우리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가의 방식을 미국의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바꿔주고 제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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